[알수록 +] 장속의 미생물–대장균은 우리 몸에 나쁘기만 할까?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18)

2020-11-01 07:00:00

대장균(이콜라이·E.coli)은 우리 몸에 나쁘기만 할까? 천만에. 얼핏 우리가 기피의 대상으로 삼지만 실제는 대장균만큼 인류에게 공헌한 미생물도 드물다. 가장 큰 공헌은 생명공학의 발전과 생명 구제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치료용 인슐린, 여러 호르몬, 각종 의약품 등 유용물질의 생산도구로, 미생물산업의 총아(블루오션)로, GMO와 유전자편집(가위)기술(CRISPR) 등 첨단 기술 발전의 모태로, 그 역할의 종횡무진은 나열하기도 벅차다. 현재도 유전자를 다루는 관련 연구에 대장균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연구실이 없을 정도로 그 명성은 대단하다. 관련 연구는 12번의 노벨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여기서 오해가 있다. 세간에는 대장균(大腸菌)이라 하면 보통 이콜라이로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균은 그냥 수많은 대장균 중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대장에 가장 많고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어 편의상 대장균이라 부르고 있을 따름이다. 또 이콜라이가 비위생적이고 무서운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로운 점이 많다. 입으로 먹어도, 피부에 닿아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전하게 있던 것이 장소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가끔 방광염, 신우염, 복막염, 패혈증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드물지만 아종(亞種)인 돌연변이 균주(菌株) 이콜라이 O-157처럼 병을 일으키는(용혈성요독증후군, 일명 햄버거병) 종류도 있긴 하다.


장(腸)은 크게 소장과 대장으로 나눈다. 소장은 소화를 담당하고 대장은 수분을 흡수한다. 미생물의 대부분은 대장에 서식하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소장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소장의 윗부분은 십이지장이라 하며, 입구는 위 속처럼 산성도가 높아 미생물이 거의 생존하지 못하지만 음식물이 중화되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숫자는 급격히 늘어난다.


대장으로 내려간 음식물은 이제는 음식이 아니라 대변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이 내용물 속에는 1g당 수백억~수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미생물이 서식하는데, 무려 대변의 1/3가량이 미생물일 정도다. 대장 속 전체 미생물을 합치면 1~1.5Kg에 이른다고도 한다. 장속 미생물은 400여 종, 수조 마리에 달한다. 이들 중에는 인체에 유익한 것, 있으나 없으나 관계없는 것, 보통 때는 무해하다가도 장내 환경이 달라지면 해롭게 작용하는 것(기회성) 등으로 구분된다. 이런 수백 종류가 서로 균형을 이루고 공생과 길항관계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건강 유지에 기여한다.


대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대부분 박테리아(세균)로서, 이들 중에는 산소가 없어야 살아가는 '혐기성균'과 산소의 유무에 관계없는 '통성혐기성균' 등이 주를 이룬다. '호기성'인 효모와 곰팡이는 생육이 어렵다. 소장의 윗부분에는 음식과 같이 삼킨 산소가 있어 호기성균이 다소 서식하긴 하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그 밀도는 낮아진다. 장속 미생물의 분포는 개인차가 심해 연령, 건강, 생활습관, 음식물의 종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미생물 생태계에 변화가 생기면 어떠한 형태로 증상이 나타난다. 원인은 이상한 음식, 질병, 면역기능의 저하, 항생제 복용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대장의 정상균총이 깨져 이상발효(부패), 가스의 발생, 유해 물질의 생성이 동반된다.


유산균도 대장균의 한 종류이다. 요즘은 유산균이 만병통치의 명약인 양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너도 나도 몸에 좋다는 식으로 다투어 먹기를 권장한다. 장내 유해균의 생육을 억제하고, 유익균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상찬의 요지다. 그러나 최근 '선전만큼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고 그 유익성이 과대포장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장내 유산균도 다른 대장균처럼 끊임없이 증식하고 있어 외부로부터의 계속된 유입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유입은 장내균총의 균형을 깨트려 오히려 해롭다고도 한다. 참고로 건강식품의 부작용으로 식약처에 신고된 건수 중 가장 많은 것이 유산균에 관련된 것이라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장 속 미생물의 분포가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최근 속속 밝혀지면서 관련 연구가 핫한 주제가 됐다. 비타민을 합성하여 우리 몸에 제공하고 비소화성부분을 분해하여 영양분으로 공급하며, 특수 미생물의 존재가 비만과 홀쭉이를 결정한다는 주장도 있다. 마른 사람의 대변을 뚱뚱이에게 이식하면 날씬해진다는 연구도, 그 반대 결과도 있다. 염증이 심해 치료가 어려울 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는 이른바 '대변 이식 클리닉'도 최근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 대장암 발병률이 크게 증가했다는 통계다. 그 이유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식생활의 서구화, 지나친 가공식품, 동물성지방의 섭취가 그 원인이 아닌가로 추측한다. 서구식에 부족한 식이섬유, 가공식품에 많은 첨가물, 기름진 음식 등.. 이 중에 특히 장내미생물에 의해 지방으로부터 나오는 과산화물(활성산소의 일종)이 이런 발암의 주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예측이다.


한편 장내미생물의 종류가 치매, 우울증, 아토피 등과도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최근 등장했다. 장을 '제2의 뇌'라 부르는 과장된 표현도 있고, 면역 세포의 70%가 장에 분포하며, 장내세균이 육체뿐 아니라 정신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서 '장-뇌 연결축(Gut-Brain Axis)' 이론까지 소환하여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부류도 있다. 이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장속 미생물이 인체에 음양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에 있어 쏟아지는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자못 이른 감이 있다.


한때 시리얼에 대장균(coliforms)인 이콜라이가 검출됐다고 해서 논란이 됐었다. 이는 이콜라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식품에 이 균이 검출되면 안 된다고 하는 법이 정해져 있어서다. 그 이유는 이 균이 발견되면 대변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음을 의미하고, 그로 인한 수인성전염병의 전파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대장균 중에 왜 이콜라이가 위생지표균(指標菌)으로 선정됐을까. 가장 연구가 잘 돼있고 배양·검출이 간단하며 편리하다는 점에서다. 실로 엄격하게도 시중의 유통식품에는 한 마리의 이콜라이가 나와서도 안 되며, 실수로 한 마리가 있어도 철퇴를 맞는다.


그런데 역겹게도(?) 일반 세균은 ml당 수만~수백만이 검출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유가 그렇고 냉면육수가 그렇다. 단, 식품의 종류마다 일반 세균의 허용치가 다르게 정해져 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런 미생물은 먹어도 해롭지 않고 오히려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이다. SCP(single cell protein, 균체단백질)나 원기소(맥주효모) 처럼.


마지막으로 이런 수많은 대장균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전편에서 음식에 딸려 들어온 미생물은 대부분 위산에 의해 살해(균)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드시 미생물 전부가 죽는 것은 아니어서 일부는 살아남아 장에까지 도달한다. 특히 위에 오래 머물지 않는 물이나 음료 등은 위산에 의해 살균이 채 되기도 전에 장으로 내려간다. 오염된 식수로 배탈이 잘나는 이유다. 소량의 균이라도 생육조건이 맞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대변으로 많은 양이 배출되더라도 숫자가 줄지 않는 것은 계속 빠른 속도로 증식하기 때문이다.


인간 출생 최초의 미생물 감염경로는 산모의 산도(産道)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 속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언필칭 미생물 샤워로 표현되는 과정에 의해 태아의 입속으로 들어가 장에 정착한다는 것이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의 장속 미생물의 분포가 자연분만과 다르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이렇게 질 속에서 유래된 유산균이 아이의 장속에 정착하여 초기의 건강과 면역기능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 이른바 면역력이 전혀 없는 무균상태의 태아가 위험천만한 세상에 노출될 때 안전한 생명줄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미생물인 셈이다. 미생물이 미생물을 방어한다? 이열치열의 미생물 버전인가. 또한 당연히 엄마의 모유 속 항체가 태아에게 전달돼 병원균의 침입을 막아준다는 2차 방어 기전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이 긴 글이 장내미생물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자연의 이치가 참 신비하고 경이롭지 않나? 대장의 미생물을, 아니 똥을 더럽다고만 하지 말고 소중히(?) 여기자. 그렇다고 일부러 먹지는 말고. 동물 중에는 본능적으로 새끼에게 자기 똥을 먹이는 종류도 있다. 유익균의 이식을 위해서다. 다음 주제는 '우리 몸 구멍 속 미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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