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최대 생산지에 멍게가 없다…“폐사율 사실상 100%”

초토화된 통영·거제 양식장

지난해 여름 역대급 고수온 여파
매년 2~6월 가장 바쁜 시기이나
올해에는 작업 물량 없어 ‘조용’
첫 경매 행사인 초매식도 취소
달걀 크기 어린 멍게 수확할 판
냉동품 재고 풀어 수요 대응키로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2025-03-04 15:49:44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의 한 바닷가 마을 물양장에 짙은 주황색 지붕을 얹은 뗏목이 줄지어 떠 있다. 이맘때 출하를 시작하는 멍게(우렁쉥이) 작업장들이다. 이곳에선 보통 2월부터 6월까지 출하 작업을 이어간다. 그런데 평소라면 활어차로 북적여야 할 물양장이 휑하다. 선홍빛 멍게와 인부들로 분주해야 할 작업장도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코끝을 자극하는 멍게 특유의 알싸한 향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의 한 바닷가 마을 물양장에 짙은 주황색 지붕을 얹은 뗏목이 줄지어 떠 있다. 이맘때 출하를 시작하는 멍게(우렁쉥이) 작업장들이다. 이곳에선 보통 2월부터 6월까지 출하 작업을 이어간다. 그런데 평소라면 활어차로 북적여야 할 물양장이 휑하다. 선홍빛 멍게와 인부들로 분주해야 할 작업장도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코끝을 자극하는 멍게 특유의 알싸한 향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김민진 기자

“달라는 곳은 많은데, 작업할 멍게가 없네요.”

만물이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 한 바닷가 마을.

곧게 뻗은 물량장을 따라 주황색 지붕을 얹은 뗏목이 줄지어 떠 있다. 이맘때 만개하는 ‘바다의 꽃’ 멍게(우렁쉥이) 작업장이다.

햇멍게 출하 시즌인 2월부터 6월까지가 이곳 작업장에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여느 때라면 전국 각지서 몰려든 활어차로 북적일 시간이지만 물양장 전체가 휑하다. 선홍빛 멍게와 인부들로 분주해야 할 작업장도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근처만 와도 코끝을 자극하던 멍게 특유의 알싸한 향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텅 빈 뗏목 주변을 서성이던 한 어장주는 “작년엔 설 쇠고 곧장 수확을 했는데, 올해는 여태 시작도 못 했다. 값을 떠나 작업할 물량이 없다. 언제쯤 가능할지 기약도 못 할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의 한 바닷가 마을 물양장에 짙은 주황색 지붕을 얹은 뗏목이 줄지어 떠 있다. 이맘때 출하를 시작하는 멍게(우렁쉥이) 작업장들이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의 한 바닷가 마을 물양장에 짙은 주황색 지붕을 얹은 뗏목이 줄지어 떠 있다. 이맘때 출하를 시작하는 멍게(우렁쉥이) 작업장들이다. 김민진 기자

제철 맞은 남해안 멍게 양식 업계가 울상이다.

지난해 여름 역대급 고수온에 주산지인 통영과 거제 앞바다 양식장이 궤멸적 피해를 당해 올해 생산할 물량이 씨가 말랐다.

급한 대로 냉동품 재고를 풀고, 연말 입식한 어린 멍게까지 채취해 발등의 불을 끌 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성장이 더뎌 제때 채취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데다 물량도 턱없이 부족해 어민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통영과 거제 앞바다에 자리한 이들 양식장은 국내산 멍게 유통량의 70% 이상을 공급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고수온에 멍게 농사가 초토화됐다. 공식 집계된 폐사율만 97%였다.

수협 관계자는 “집계 이후 후유증으로 추가 폐사한 것까지 합치면 사실상 100%, 전량 폐사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했다. 통영과 거제 멍게 양식장 200여 어가, 700여 ha를 통틀어 일부라도 멍게 생존이 확인된 곳은 한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중에도 지금 채취 가능한 어장은 거제에 있는 1곳 정도”라며 “4000봉(1봉은 5m, 1000~3000여 개체의 멍게가 부착) 정도 있었는데, 이마저도 3분의 1 정도는 죽어서 실제 작업하면 50kg 상자 2000~2500개가 겨우 될 듯하다”고 전했다.



작년 여름 역대 최악의 떼죽음 피해가 발생한 통영의 한 멍게 양식장. 부산일보DB 작년 여름 역대 최악의 떼죽음 피해가 발생한 통영의 한 멍게 양식장. 부산일보DB

얇은 껍질에 싸인 멍게는 양식수산물 중에도 유독 수온 민감하다. 적정 생장 수온은 10~24도다. 찬물은 웬만큼 버티지만, 이를 넘어서면 생리현상이 중단되고 심하면 속은 물론 껍질까지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때문에 통상 여름을 지나면 10~20% 정도는 폐사한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에는 30도를 넘나드는 유례없는 고수온이 한 달 가까이 이어졌고, 1년 넘게 애지중지 키운 성체는 물론 산란과 채묘에 필요한 어미와 새끼 멍게까지 모조리 폐사했다.

망연자실하던 어민들은 지난해 11월 일부 어장에 새 종묘를 입식했다. 겨우 넉 달 남짓 키운 것들이라 작은 달걀 정도 크기지만 지금은 이 정도 개체라도 수확해야 할 판이다.

통영의 한 양식장 관계자는 “당장은 힘들고 못 해도 보름이나 한 달 정도 더 키우면 그나마 상품성이 있을 듯하다”면서 “이것저것 다 끌어와도 평년 수요를 맞추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멍게수협은 매년 2월 중순에서 3월 초순에 갖던 초매식마저 취소했다. 초매식은 본격적인 수확과 출하를 알리려 조합 공판장에서 진행하는 첫 경매 행사다. 어민들에겐 시즌 개막을 알리는 중요한 이벤트지만 올해는 이 자리에 내놓을 물량조차 귀한 실정이다.

초매식 없이 공식 위판을 시작하는 것은 2011년 공판장 개장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작년 여름 고수온에 궤멸적 피해를 당한 어민이 11월 입식한 어린 멍게들. 5m 길이 봉줄에 제법 많이 붙었다. 불과 넉달 남짓 성장한 것들이라 크기는 작은 계란 정도지만 당장 이거라도 채취해야 할 정도로 물량이 부족하다. 멍게수협 제공 작년 여름 고수온에 궤멸적 피해를 당한 어민이 11월 입식한 어린 멍게들. 5m 길이 봉줄에 제법 많이 붙었다. 불과 넉달 남짓 성장한 것들이라 크기는 작은 계란 정도지만 당장 이거라도 채취해야 할 정도로 물량이 부족하다. 멍게수협 제공

멍게수협은 일단 보유 중인 냉동품 재고를 풀어 시장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여기에 업계 미래를 담보할 고수온 대책 마련에도 나선다. 생산 주기를 정상화하는데 최소 2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먼바다에 안정적으로 양식장을 시설하고 관리할 방안을 찾는다는 목표다.

이미 경남수산안전기술원, 통영시, 거제시와 심해 어장 개발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멍게수협 김태형 조합장은 “이대로는 어렵게 어장을 복구해도 여름에 날려버리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라며 “심해 어장은 기술적인 문제와 민원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다. 머리를 맞대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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