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서 금융·경제 정책을 입안하고 관련 제도를 설계·집행하는 일을 30여 년간 하다가 현재는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 기관에서 CEO를 맡고 있다.
〈팩트풀니스〉(책 표지)는 공직에서 정책 입안을 하던 2019년 당시 필독서로 손꼽히던 책이다. 정책 수립 업무를 하다 보면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기 십상이다. 잘 안되거나 소외된 부분을 어떻게 하면 개선하고 선진화시킬지가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잘 돌아가는 분야는 정부가 크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필자는 나름대로 관련 데이터의 시계열과 현황, 전문가 견해, 국내외 트렌드와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에 합리적인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책에서 제시한 13개의 3지선다 퀴즈를 손쉽게 풀었지만, 정답률이 30%에도 못 미쳤다. 세상이 안 좋아지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어려운 나라와 민족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해 왔던 것 아닌가 싶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오답을 고르는 이유를 10가지 본능으로 나눠 분석하고 있다. 그중 앞부분 3~4개는 특히 공감이 간다.
먼저 간극 본능이다. 사람들은 흑과 백, 모 아니면 도로 이분화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약 75%는 중간소득 국가에 산다. 불평등이 아무리 심해도 양극단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사안을 분석할 때 ‘평균’보다는 ‘분산’에 주목하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분법은 세계은행에서도 이제는 잘 쓰지 않는다.
두 번째는 부정 본능이다. 뉴스를 보면 세상에 좋지 않은 일만 벌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중은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프리카 빈곤층 어린이 후원 캠페인은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지만,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소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언론인이나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면서 긍정적인 소식은 우리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등도 무릎을 탁 칠 만큼 공감이 간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주요 제도 개선을 이야기할 때 OECD 평균을 들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OECD 평균이 맞나? 나라마다 역사와 환경, 처한 상황이 너무나 다른데 단편적인 접근은 아닐까? 듣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측면이 아니라, 정확한 ‘Fact(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특히 이 책을 추천한다.
이윤수 한국예탁결제원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