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 2026-10-19 17:26:12
클립아트코리아
장기간 저평가된 저PBR(저주가순자산비율)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는 ‘저PBR 공표제도’가 다음 달 처음 시행되면서 저PBR 기업들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 기업가치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특히 이번 제도가 국내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시행되는 만큼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이란
PBR은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됐는지 판단할 때 활용되는 지표다. 주가순자산비율(Price to Book Ratio)을 뜻하며,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눠 계산한다. 기업의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얼마나 높은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순자산은 기업이 보유한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으로, 회계상 주주에게 귀속되는 자산의 가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순자산이 1조 원인 기업의 시가총액이 1조 원이라면 PBR은 1배다. 시가총액이 5000억 원이면 PBR은 0.5배, 2조 원이면 2배가 된다.
PBR이 1배보다 낮으면 주식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의 가치가 장부상 순자산보다 낮다는 의미다.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이 1조 원인데 시장에서는 기업 전체의 가치를 1조 원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업은 통상 저평가된 저PBR 기업으로 분류된다.
다만 PBR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업의 순이익이 떨어지거나, 향후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면 주가가 낮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장성이 높고 이익을 꾸준히 내는 기업은 순자산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PBR이 1배를 웃돌기도 한다.
업종별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금융업이나 부동산업처럼 자산 규모가 큰 업종과 기술력, 성장 가능성 등이 기업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보기술(IT) 업종, 첨단 업종 등은 PBR을 해석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
■11월 2일 명단 첫 공개
19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다음 달 2일 저PBR 기업의 명단이 거래소 공시시스템 카인드(KIND)에 공개될 예정이다.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도 종목명에 ‘저PBR’ 표시가 붙어 투자자들이 종목을 조회하거나 거래할 때 장기 저평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저PBR 기업 공개는 장기간 낮은 기업가치 평가를 받는 상장사를 공개해 자발적인 개선 노력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투자자에게는 기업의 가치와 재무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PBR이 낮다고 공표 대상이 되는 건 아니며, 업종별 특성도 고려된다. 코스피는 업종별 PBR 하위 25%, 코스닥은 하위 10%에 최근 3년간 6개 반기 모두 기준 이하에 머문 기업이 대상이다. 일시적으로 PBR이 상승해 공표 대상에서 빠지는 일을 막기 위해 한 반기만 기준을 벗어난 경우에는 이전 반기까지 추가로 확인한다.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을 일괄 선정하는 대신 업종 내 상대적인 순위와 저평가가 이어진 기간을 함께 반영한다.
공표 대상에 해당하더라도 오는 22일까지 저PBR 개선계획을 포함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면 향후 2개 반기 동안 명단에서 빠질 수 있다. 저평가 원인과 개선 목표, 실행 계획, 이행 평가 등을 담아 요건을 충족하면 면제받는 구조로,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을 미리 완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13개 반기 중 12개 반기 이상 업종별 하위권에 머문 ‘상습 저PBR’ 기업에는 공시를 통한 면제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형식적인 계획 발표만으로 장기간 이어진 저평가 상태를 해소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다만 이번 첫 공표에 한해 오는 22일 산정한 PBR이 기준을 웃돌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PBR 산정에 쓰이는 시가총액은 기준일을 포함한 최근 20거래일 평균이다. 순자산은 외부감사인의 감사·검토를 받은 사업·반기보고서 수치를 적용한다. 개선 계획 발표 이후 주가가 오르더라도 일정 기간의 평균 시가총액이 반영되는 만큼 공시 여부와 함께 기준일까지 주가 움직임이 첫 명단을 가를 전망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될까
거래소가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국내 증시의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있다. 기업의 실적과 자산 규모 등에 비해 주가가 낮게 평가되는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국내 자본시장의 신뢰와 투자 매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앞서 당정도 이른바 ‘주가 누르기’ 해소를 위해 저PBR 기업 공시 강화에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K-자본시장특별위원회 오기형 위원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저PBR 기업이 굉장히 많다”며 “PBR 1 이하 기업이 60~70% 정도인데, 이런 저PBR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제도가 저PBR 기업을 제재하거나 투자 부적격 기업으로 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련 기업을 공개해 시장의 관심을 높이고 기업 스스로 저평가 원인을 분석해 기업가치 개선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제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저PBR 기업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특히 첫 명단 공개가 기업들의 기업가치 개선계획 제출을 유도하고 실제 이행으로 이어질지가 제도의 실효성을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개선계획에 배당 목표와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 구체적인 실행 일정 등이 담기고 이를 충실히 이행해야 주가 상승 등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기업의 지속적인 경영 개선 노력과 주주와의 소통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BNK투자증권 김장원 이사는 “중장기적으로는 기업 여건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업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고 이행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금융당국도 이행 여부를 점검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