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은 밝고 경쾌한데 이 우울감은 뭐지?

권여현 개인전 ‘태양은 가득히’
4월 6일까지 오케이앤피 부산
영화 장면 연상 작품 다수 출품
인터넷 밈·형광색 등 젊은 감각
빠르고 경쾌한 붓질도 매력적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2025-03-27 07:00:00

부산 해운대구 오케이앤피(OKNP)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권여현 작가의 개인전 ‘태양은 가득히’에 전시된 작품 ‘낯선곳의 일탈자들’(2025).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오케이앤피 제공 부산 해운대구 오케이앤피(OKNP)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권여현 작가의 개인전 ‘태양은 가득히’에 전시된 작품 ‘낯선곳의 일탈자들’(2025).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오케이앤피 제공
권여현 개인전 ‘태양은 가득히’에 전시된 작품 ‘낯선곳의 일탈자들’(2025). 오케이앤피 제공 권여현 개인전 ‘태양은 가득히’에 전시된 작품 ‘낯선곳의 일탈자들’(2025). 오케이앤피 제공

르네 클레망이 감독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는 치밀한 구성과 절묘한 반전이 인상적이지만, 사람들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잘생긴 알랭 들롱의 얼굴이다. 서스펜스물이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갖고 있어 아이러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부족해 보이는 인물들이 화려한 색과 함께 감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부산 해운대구 그랜드조선부산 4층의 오케이앤피(OKNP) 부산에서 열고 있는 권여현(64·홍익대 교수) 작가의 개인전 ‘태양은 가득히’ 전시장 풍경이다. ‘델마와 루이스’(1991) 영화 주인공처럼 보이거나, ‘브레이킹 어웨이’(1979)에 나오는 장면도 차용됐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다수지만, 그에 국한하진 않는다. 시간과 장소, 인물의 결합이 초현실적이다.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밈’(Meme)에서 가져온 이미지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영화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디자인 잡지도 즐겨 보는데, 회화에선 금기시하는 형광색과 텍스트 도안 배치도 과감하게 가져와요. 1960, 70년대 히피 흑백사진에다 요즘 컬러 감각을 보태는 거죠. 무엇보다 저는 푼크툼(‘찌름’이라는 뜻으로, 사진을 봤을 때의 개인적인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중시합니다.”

같은 제목의 작품. 오케이앤피 제공 같은 제목의 작품. 오케이앤피 제공
같은 제목의 작품. 오케이앤피 제공 같은 제목의 작품. 오케이앤피 제공

그는 감각도 배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옛날 사람이잖아요. 젊은 감각은 배워야죠. 다만, 젊은 사람의 푼크툼은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다 컬러로 해결했습니다. 점점 많은 장치를 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푼크툼을 찌를 수 있게끔 노력합니다.” 무조건 밝고 쾌활함만 추구하는 건 아니었다. “밝기만 하면 오락이잖아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 세 가지에 중점을 둡니다. 개인적으로는 노스탤지어(향수)가 있어야 하고, 집단적으로는 우울함이나 한(恨), 모노노 아와레(비애), 페이소스(고통 등)가 들어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타나토스도 있어야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구 오케이앤피(OKNP) 부산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권여현 작가. 김은영 기자 부산 해운대구 오케이앤피(OKNP) 부산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권여현 작가. 김은영 기자

권 작가는 회화를 중심으로, 설치, 사진, 퍼포먼스, 실험영화, 입체 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신화, 철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이를 위한 표현 형식인 포스트모더니즘까지 4가지 코드의 경계를 넘나든다. 개인전만 60회를 넘길 정도로 다작이지만, 부산에서 대형 전시를 여는 건 드물었다. 그의 그림을 보다 보면 실제 장소는 아닌데,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낯선 풍경이 현실에서, 그럴듯하게 존재한다는 게 그의 작업이 가지는 힘일 것이다.

작가는 철저한 계산 아래, 이 모든 것들을 캔버스 화면에 반영했다고 한다. “한 작품에 총체적으로 다 들어가 있는 건 아니고, 전체 전시 구성 작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사소한 터치라든지 화면 구성, 등장인물에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마구잡이로 그려놓고 보는 사람이 이해하라는 건 아닙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같은 제목의 작품. 오케이앤피 제공 같은 제목의 작품. 오케이앤피 제공

빠르고 경쾌한 붓질도 매력적이다. 동양화 붓질을 가져왔다. 백묘법보다는 몰골법을 좋아한다. 열 번 칠할 걸 한두 번에 완성하는 게 목표이다. 그래서일까, 분명 유화인데 아크릴처럼 가벼운 느낌이 든다. “요즘 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현대는 광선을 보는 방법이 엘이디이기 때문에 옛날과 채색법이 다릅니다. 영상 같은 빛이 섞이니까 점점 투명하고 밝아지는 거죠. 색채감은 있는데 뒤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그리려고 합니다. 현대적인 기법은 동원하되 나의 색깔이나 필법으로 통일시켜야죠.”

권여현 작가. 김은영 기자 권여현 작가. 김은영 기자

권 작가의 하루 작업량은 어마어마했다. “학교 수업 있는 날을 빼고 거의 매일 그린다고 보면 됩니다. 2년 전엔 1년에 12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동시에 여섯 군데서 전시하기도 했고요.” 서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권 작가는 1987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단색화와 민중미술이 지배하던 시기 자신만의 독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작가는 ‘동아미술상’(1986), ‘석남미술상’(1991), ‘하종현미술상’(2005), 한국미술평론가 협회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2018) 등을 수상했다. 전시는 내달 6일까지 열린다. 문의 051-744-6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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