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 2025-08-06 17:53:28
“정보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서로 희망을 건네며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고자 합니다.”
28년째 한결같이 포럼의 장을 마련해온 세화병원 이상찬 병원장은 “난임 치료는 기술의 영역을 넘어 마음의 치유까지 포함해야 한다”며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이 치료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병원장이 오는 23일 부산 서면 롯데호텔부산서 개최하는 ‘세화아카데미 2025’는 1997년 ‘세화 심포지아’에서 출발했다. 국내외 의료진이 한데 모여 의학지식을 공유하고 난임 해법을 모색하는 심포지엄에서 인간 삶의 의미와 존엄을 함께 묻는 아카데미로 발전한 것은 한 고3 암 환자가 계기가 됐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생식능력이 상실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어린 암 환자는 뒤늦게 정자 채취를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병원장은 어린 암 환자를 만난 이후 난임 치료의 본질을 고민하게 됐다. 임신 실패의 반복, 사회적 시선, 가족 내 갈등 등 난임과 관련한 여러 고통은 단지 생물학적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삶 전반을 아우르는 깊은 주제로 이어짐을 절감했다. 그는 “인문학은 이같은 복합적 고통을 언어화하고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라며 “과학 영역에 머물렀던 심포지엄에 마음을 어루만지고 삶을 성찰하는 인문학의 영역을 더해 ‘사람을 위한 의학’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밝혔다.
올해 주제는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 항암·방사선 치료 전 가임력 보존방안과 난자동결보존 지원사업’이다. 항암치료 등으로 생식능력을 잃을 수 있는 환자들을 위한 난자 동결 기술과 관련 지원정책이 집중 조명된다. 부산시가 가임력 보존 지원 조례를 추진 중인 가운데 세화병원은 조례 설계 과정에 의료자문으로 참여했다. 실제로 한 부부가 채취한 난자 중 일부를 동결해두었다가 수년 뒤 같은 난자로 둘째까지 성공한 사례를 소개한 이 원장은 “건강할 때 생식세포를 보존해두는 것은 가족의 확장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라고 했다. 이어 “가임력 보존은 개인의 생식 문제를 넘어 삶의 연속성과 가족의 미래를 지켜내는 중요한 의학적 행위”라며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면 치료 선택 폭도 크게 넓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인문학 강연에는 건축가 승효상이 연사로 나선다. 그는 2001년 세화병원 본관 설계를 맡은 인연이 있다. ‘빈자의 미학’으로 알려진 그는 이번 강연에서 ‘이 시대 우리의 도시와 건축’이라는 주제로 도시와 공간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정서적 영향을 조명한다. 이 병원장은 “공간 역시 치료의 연장선”이라며 “물리적 치료뿐만 아니라 정서적 회복도 의학이 도달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장은 이번 아카데미가 생식의학의 최신 흐름을 공유하는 정보의 장 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와 마음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함께 고민하며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정을 공유했으면 한다”며 “생명은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며, 우리는 그 기적을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