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한 기자 kdh@busan.com | 2025-10-15 08:00:00
“너 캄보디아로 팔려 온 거야”
지난 7월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캄보디아로 출국했다가 그대로 감금된 20대 A 씨가 범죄조직으로부터 들은 첫마디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조직원들은 A 씨에게 몸값으로 3000만 원을 내라고 협박했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일까지 시켰다. 휴대전화와 여권 등 소지품을 뺏긴 채 위치를 알 수 없는 건물 3층에 감금당한 A 씨였다.
그러나 A 씨는 다음 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현지 건물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며 탈출을 강행했다. 찰과상을 입는 등 다리에서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인근 민가로 도주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한국 대사관과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A 씨는 같은 달 20일 어렵사리 귀국해 국내에서 치료를 받고 25일 경남경찰청에 해당 사실을 신고했다.
경찰조사 결과 생활고를 겪던 A 씨는 올 초 불법 대부업체로부터 소액을 빌렸다. 원금을 훨씬 넘는 금액을 갚았지만 좀처럼 상환액이 줄지 않았다. 대부업체는 채무를 빌미로 A 씨에게 협박을 일삼았다.
그러면서 “캄보디아로 가면 빚을 탕감해 주겠다”, “캄보디아 카지노에서 일주일 일하면 350만 원을 벌 수 있다”며 꾀어냈다. 대부업체에서 직접 A 씨의 항공권까지 마련해 제공하기도 했다.
마지못해 캄보디아로 건너갔던 A 씨는 범죄조직원으로부터 팔려왔다는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을 알게 됐다.
지난 8월 4일에도 “캄보디아에서 납치됐다가 풀려났다”는 신고가 창원중부경찰서에 접수됐다.
20대 남녀가 SNS를 통해 알게 된 브로커로부터 고수익 알바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지난 7월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납치된 것.
캄보디아 범죄조직은 이들을 붙잡아 두고 양가에 전화를 걸어 납치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그리고 ‘1명당 800만 원씩, 총 1600만 원을 가상화폐로 지불하면 자녀를 풀어주겠다’고 인질극을 벌였다. 이들은 실제로 몸값을 지불한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경남에서 접수된 캄보디아 실종 혹은 실종의심 신고는 112로 총 11건이 접수됐다.
신고 대상은 모두 20~30대 젊은 층이다. 이 중 7건은 단순히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가 뒤늦게 소재가 파악됐고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나머지 4건은 아직 소재 파악이 이뤄지지 않아 경찰에서 이들의 출국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울산에선 캄보디아로 강제 출국 직전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20대도 있었다. 지난해 1월 SNS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홍보 글을 보고 연락했다가 사건에 휘말린 B 씨다.
그는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약속 장소인 인천의 한 역 앞으로 이동해 만난 일당 2명에 이끌려 인근 호텔로 갔다가 18시간 동안 감금당했다.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뺏긴 채 온몸을 구타당했다.
B 씨를 감금한 이들 일당은 현지 보이스피싱 브로커와 접촉하기 위해 울산으로 갔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그 덕에 B 씨는 운 좋게 자유의 몸이 됐다.
범죄 전문가들은 젊은층이 이 같은 고액 일자리를 미끼로 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SNS에 빠져있다 보니 피해자를 물색하고 접근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워졌는데 정작 젊은층의 경각심은 낮아졌다는 이야기다.
경남대 경찰학과 김도우 교수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경각심이 중요하다”면서 “정부도 해외 연수나 고수익 등 중복적으로 노출되는 단어들을 온라인 서비스 내에서 자체적으로 걸러내는 방법이나 정상적인 기업체가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