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명성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신산한 삶… ‘거장의 비밀’ 특별전

부산박물관, 내년 1월 16일까지
500년 아우르는 영국 문학 거장
초상화·친필 원고·단행본 등 137점
한자리서 만나는 특별한 기회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5-10-19 16:32:29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거장의 비밀’을 찾은 관객들이 셰익스피어 초상화를 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거장의 비밀’을 찾은 관객들이 셰익스피어 초상화를 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거장의 비밀’ 전시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거장의 비밀’ 전시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거장의 비밀’ 전시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거장의 비밀’ 전시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퍼스트 폴리오’. 김종진 기자 kjj1761@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퍼스트 폴리오’. 김종진 기자 kjj1761@

금,토,일요일 오후 2시에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슨트 설명을 듣고 있는 관객 모습. 김효정 기자 금,토,일요일 오후 2시에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슨트 설명을 듣고 있는 관객 모습. 김효정 기자

요즘 책들은 첫 장 혹은 끝머리에 저자의 사진과 약력을 넣어 자연스럽게 작가에 관해 알게 된다. 그런데 사진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독자들은 작가의 얼굴을 알 수 없었다. 초상화라는 매체가 있기는 해도 당시 왕족 정도 되어야 초상화를 그리는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당시 초상화는 최고의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고, 화가는 단순히 인물의 외면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정체성 즉 내면까지 초상화에 담는다고 생각했다.

부산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특별 교류전 ‘거장의 비밀: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은 이런 점에서 일반인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현장이다. 영국 초상화 박물관을 비롯해 주요 박물관에서 온 137점의 전시품은 영국 문학계 거장들의 초상화와 친필 원고, 초판본, 단행본까지 아우른다.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때로 작품 이면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때가 많다. 이 전시를 통해 오히려 작가의 삶과 작품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고 친필과 편지, 문서에선 그들의 생각과 글쓰기 방식을 상상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특히 당시에 여성들의 글쓰기 활동이 제한돼 18세기와 19세기 동안 남성으로 느껴지는 필명 뒤에 숨어서 작품 활동을 해야 했다. 여성 작가의 초상화 역시 남자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것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전시는 모두 5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처음은 ‘작가를 찾아서_ 글, 초상, 그리고 삶’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톨킨은 나무 뿌리 사이에 앉아 있는 초상 사진으로 만난다. 그의 소설 속 판타지 세계를 연상케 한다. 시인 존 키츠는 내면의 깊이까지 담은 듯 여운이 있는 초상화로 담겼다. 절친한 친구가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존 키츠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름답고 가녀린 외모가 인상적인 초상 사진도 1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존 키츠의 초상화. 김효정 기자 존 키츠의 초상화. 김효정 기자

전시장 중간에는 브론테 자매의 거실을 재현한 세트가 있다. 김효정 기자 전시장 중간에는 브론테 자매의 거실을 재현한 세트가 있다. 김효정 기자

2부는 ‘위대한 여정_거장이 되기까지’라는 제목이 붙었다. 존 밀턴의 작품 ‘실낙원’ 계약서는 영국에서 작가와 출판사가 계약한 가장 오래된 문서이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번역한 알렉산더 포프는 편지의 뒷면에 원고를 작성했다는 걸 볼 수 있다. 존 밀턴과 윌리엄 워즈워스의 초상화가 두 번째 공간의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3부는 ‘억압과 검열, 그리고 저항_장벽에 맞선 작가들’이라는 제목이다. 정치적 도덕적 사회적 검열과 차별이라는 장벽을 넘어 위대한 작가가 된 이들을 소개하며 당시 정체를 숨기며 활동해야 했던 사연도 들을 수 있다. 샬럿 에밀리 앤으로 잘 알려진 브론테 자매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다. 각자 남성 가명을 사용해 작품을 발표했고 <제인 에어>, <폭퐁의 언덕> 등이 유명해지자 작가의 정체를 둘러싼 추측이 무성해졌다. 브론테 자매의 유일한 단체 초상화는 남자 형제인 브랜웰 브론테가 그렸다. 세 자매와 함께 화면 중앙에 희미하게 지워진 인물 자국이 보이는데 브랜웰이 본인을 덧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상화는 자매들이 모두 죽은 후 캔버스 틀에서 떼어내 접힌 채 찬장 위에서 발견되었고, 국립초상화박물관은 이례적으로 이 그림의 접힌 자국과 벗겨진 물감 자국을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3부에선 오스카 와일드의 모델 같은 초상 사진과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뮈엘 베케트가 파리 카페에서 촬영한 사진을 챙겨보길 권한다.

4부의 제목은 ‘명성_빛과 그림자’이다. 명성은 성공의 보상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작가의 창작을 옭아매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유명한 추리소설가 코난 도일은 자신이 <셜록 홈스> 시리즈 작가로만 통하는 것이 싫어 소설에서 셜록 홈스를 죽였지만, 독자들의 항의 때문에 작가가 원하지 않았어도 셜록 홈스를 부활시켜야 했다. 코난 도일이 셜록 홈스에 의해 족쇄가 채워진 풍자 삽화와 셜록 홈스를 죽인 페이지가 펼쳐진 책도 함께 볼 수 있다.


<셜록 홈스> 시리즈를 쓴 작가로만 알려지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코난 도일의 상황을 풍자한 삽화. 김효정 기자 <셜록 홈스> 시리즈를 쓴 작가로만 알려지는 것을 무척 싫어했던 코난 도일의 상황을 풍자한 삽화. 김효정 기자

제인 오스틴의 유일한 초상화. 부산박물관 제공 제인 오스틴의 유일한 초상화. 부산박물관 제공

찰스 디킨스 초상화. 부산박물관 제공 찰스 디킨스 초상화. 부산박물관 제공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친필 원고. 부산박물관 제공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친필 원고. 부산박물관 제공

전시장 마지막에는 영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김효정 기자 전시장 마지막에는 영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김효정 기자

살아생전 제작된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초상화와 단 한 점의 희미한 스케치만 남은 제인 오스틴, ‘디킨스적’이라는 형용사가 탄생할 만큼 유명한 찰스 디킨스의 초상화와 독특한 필체가 인상적인 친필 원고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인 해리 포터를 만든 작가 제이 케이 롤링의 연필 초상화는 작가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자꾸만 눈길이 간다.

마지막 5부는 ‘글의 힘_세상을 바꾸는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기성 체제에 도전한 작가들과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작가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와 1518년에 만든 유토피아 책, 조지 엘리엇, 실비아 팽크허스트 등이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전시는 내년 1월 16일까지 열리며 매주 금, 토, 일요일 오후 2시에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 1만 2000원, 어린이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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