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암초에 국제해운 ‘첫 탄소세 시장’ 도입 좌초

선박 온실가스 감축 ‘중기 조치’
국제해사기구, 채택 1년 연기
트럼프·산유국 반대, 합의 불발
2050 탄소중립 달성 목표 주춤
한국 해운·조선업도 부담 가중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2025-10-19 18:17:17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 조치’ 채택 결정 논의가 1년 뒤로 연기됐다. IMO 특별회기 회의 모습. 기후솔루션 제공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 조치’ 채택 결정 논의가 1년 뒤로 연기됐다. IMO 특별회기 회의 모습. 기후솔루션 제공

국제해운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 첫 탄소세 시장 도입이 최종 문턱에서 불발됐다.

해양수산부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 조치’ 채택 결정 논의가 1년 뒤로 연기됐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19일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중기 조치’의 요지는 국제수역을 지나는 5000t 이상 선박은 IMO가 정한 온실가스 집약도(GFI) 감축 목표를 준수하면 인센티브를 받고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세를 내는 조치다. 이 규제안은 해상운송 부문의 순탄소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이른바 ‘넷제로 프레임워크’의 일부였다. IMO 구상대로라면 이 내용을 포함한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개정안이 2027년 3월부터 발효돼, 대형 선박들에 2028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7% 감축할 의무가 부과될 예정이었다.

국제 해운은 전 세계 교역의 90%, 우리나라의 경우 무려 99%를 차지하지만,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제외돼 오랫동안 감축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다. 그러다 지난 4월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중기 조치’ 초안이 극적으로 승인됐고, 지난 14~17일 열린 국제해사기구(IMO) 특별회기에서 최종 채택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이 산업 분야의 대규모 협의체인 세계해운협의회(WSC)도 나라별로 파편적인 규제가 가해지는 것보다 전 세계에 걸쳐 통일된 기준이 시행되는 게 낫다며 비용과 효율 면에서 이 구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상은 초기부터 난항을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IMO의 계획이 “녹색 환상에 쓰기 위한 ‘신종 녹색사기해운세’ 신설”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미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미국은 특별회기 시작 전부터 중기 조치 찬성국을 상대로 관세와 비자 제한 등 보복 조치를 경고했고, 회기 개막 후에도 산유국을 비롯한 반대국들은 안건 상정 자체를 거부하며 본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오랜 시간 협상을 교착 상태에 빠뜨렸다.

결국 중기 조치의 최종 채택 여부를 두고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회기 종료 시간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기 조치 논의 1년 연기 안건을 제출해 이에 대한 찬반 표결이 진행됐다. 그 결과 찬성 57, 반대 49, 합의는 1년 뒤로 미뤄졌다.

이번 연기로 IMO가 설정한 ‘국제해운 2050 탄소중립’과 ‘2030년까지 10% 무탄소 연료 전환’을 향한 제도적 엔진이 한순간에 불투명해졌다. 이미 합의된 목표들을 향해 나아가고자 마련돼 온 이행 기반이 위축된 것이다.

차기 회의에서 중기 조치가 재논의 끝에 채택되더라도, 예상 발효 시점인 2028년부터 2030년까지 불과 2년 만에 20~30%의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해운·조선업계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HMM, 현대글로비스, 팬오션 등 국내 주요 선사들은 국제해운 탈탄소가 시대적 과제가 된 상황에서, 이미 자체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1~2위 조선업과 7위권 해운업을 모두 보유한 한국의 산업 측면에서도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

기후환경 단체들은 “국제사회는 시급히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기 조치 채택을 재논의해야 한다. 한국 정부 역시 다음 회의에선 더욱 적극적인 기후 리더십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2030년은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가를 결정적 분기점인 만큼, 1년 지연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며, 국제사회의 기후시계를 늦추는 심각한 후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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