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고서 경매의 세계, 적과의 공존? 책과의 공존!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9-12 09:00:00

책이 팔리지 않는다. 출판시장은 구텐베르크 이래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여기저기에 붙은 임대 딱지에 부산의 자랑인 보수동 책방골목조차 청승맞게 보일 지경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에는 유튜브나 SNS가 책을 볼 시간을 빼앗아 간 탓이라는 해석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부산에 유튜브 경매를 통해 고서(古書)를 판매하는 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적과의 동침’과도 같은 고서 유튜브 경매 현장을 보면서 책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봤다.


‘고서점’ 양수성 대표가 양옥션을 통해 유튜브 고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고서점’ 양수성 대표가 양옥션을 통해 유튜브 고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경매 시작가는 1만 원부터 출발합니다. 1만, 1만, 1만…. 2만, 2만, 2만…. 더 안 계시면 2만 원에 낙찰합니다.” 고서나 고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매주 수요일 만사를 제치고 모이는 곳이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은 아니고 각자의 컴퓨터 모니터 앞이었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자리 잡은 ‘고서점’ 양수성 대표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에 유튜브 고서 경매 사이트 ‘양옥션(YANG-auction)’을 연다. 전국에 둘밖에 없는 유튜브 고서 경매 사이트다.

백문이 불여일견. 지난달 27일에 열린 제213회 경매를 참관하기로 했다. 누구나 유튜브에서 ‘양옥션’을 치고 들어가 보면 된다. 하지만 경매에 참여하려면 이름과 주소를 미리 문자로 통지해야 하고, 전화 입찰도 가능하다. 경매는 꽤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에 경매 전에 밴드에 올라온 경매 물건을 훑어보고 관심 가는 물건을 점찍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날은 총 80권의 고서가 경매 물건으로 올라왔다. 경매 시작가가 대부분 1만 원이고, 최고 높은 가격이 5만 원이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큰 부담 없이 재미 삼아 참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제목, 저자, 내용, 발행 시기, 책 상태와 함께 이미지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가 되어 있었다. 소개글을 미리 훑어보니, 세상에 내가 모르는 책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관심인지 욕심인지 아무튼 뭔가가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달 27일에 열린 제213회 경매에 오른 주요 책자. 지난달 27일에 열린 제213회 경매에 오른 주요 책자.

개인적으로는 민영환이 쓴 <해천추범(海天秋帆)>에 눈길이 갔다. 1959년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한 책이다. 민영환은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나라가 망하는데 어찌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라며 순절한 애국자다. 이 책은 1896년 민영환 특사 일행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과정을 서술한 견문록이다. 과거에 급제 후 주러시아·주일본 공사 등을 지낸 그의 눈에 당시 러시아가 어떻게 비쳤을지 궁금하다.

<한국기행>은 같은 해에 번역 출간됐다. 저자 에른스트 오페르트의 이름을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본 것 같았다. 알고 보니 1868년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고 했던 자다. 비록 목적이 개항을 끌어내려는 것이었다고 해도 도굴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다. 다만 그 시절 조선의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풍속이 적혔다니,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이 생긴다.

일제강점기 마산에서 활동한 일본인 지식인 스와 시로가 1927년에 발행한 <경남사적명승담총(慶南史蹟名勝談叢)>에도 관심이 간다. 부산을 비롯해 통영, 마산, 진주, 진해, 통도사·만월사, 임진왜란과 관련된 자료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부산·경남의 기초 자료로 쓸만해 보인다. 이처럼 귀한 책들의 경매 시작가가 모두 1만 원이라니 책값이 너무 저렴한 게 아닌가 싶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됐다. 물품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바로 입찰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입찰자들의 시차를 고려해 운영자가 10초를 센 뒤 밑줄을 긋고 최고가 입찰자가 낙찰을 받는다. 일제 강점기 1925년에 간행된 <중학 식물교과서>부터 이날의 경매가 시작됐다. 이 책은 거의 모든 페이지에 도판을 담고 있고, 일본에서 발행된 식물학 교과서이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해방공간의 책들이 많이 출품되는 날이었다.

책 보호를 위해 두터운 한지로 ‘가의’를 했다는 설명을 듣고 사전을 찾아봤다. ‘가의(加衣)’란 책의 겉장이 상하지 아니하게 종이, 비닐, 헝겊 따위로 덧씌우는 일을 말한다. 아슬아슬한 경매 낙찰 과정과 맞물려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3시간 반 이상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고서 경매는 생생한 역사 공부 시간이었다. 경매가 끝난 뒤 유튜브 양옥션을 운영하는 양수성 유튜버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양수성 씨가 온통 책에 둘러싸여 있다. 양수성 씨가 온통 책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신은 유튜버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유튜브를 이용해서 경매를 하는 고서점 주인이지, 유튜버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는 이유였다. 유튜버의 정의는 유튜브 플랫폼에 동영상을 제작하고 업로드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1인 미디어 창작자를 의미한다. 고서 유튜브 경매는 전국에 부산과 서울 각각 한 곳밖에 없다. 독특한 콘텐츠를 4년째 만들고 있는 유튜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다.

양 대표에게 코로나 팬데믹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온라인에 책 사진만 띄워 놓고 판매하는 방식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는 이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폐쇄하고, 유튜브 경매 형태로 바꿨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았다. 시작하고 1년 동안은 유튜브 경매에 4~5명만 들어왔다. 매주 한 번씩 해서 4년이 지나니 구독자 수 382명으로 성장(?)했다. 이 숫자를 우습게 볼 수 없는 이유는 국내 고서 수집가가 500~1000명, 고서 전문 딜러는 100명도 안 되기 때문이다. 입찰에 참여하는 분들이 누군지 거의 알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치 있는 책이 들어오면 어떻게 알고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오늘도 공부 잘해 고맙다’라는 문자를 받으면 더 힘이 나기도 한다.

고서의 매력이 무엇일까. 양 대표는 고서는 그 자체가 역사에 가깝다는 대답을 내놨다. 그를 거쳐간 1600년대 말에 간행된 한 문집이 그랬다. 최초의 책 주인은 300년 전에, 그 뒤 바뀐 주인은 200년 전에 책에다 자신의 기록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때 이 문집을 소장했던 세 번째 주인은 어디서 샀고, 감흥이 어떻다는 기록을 소상히 남겼다. 수백 년 손바뀜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안고 있는 책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처음엔 이런 귀한 책을 아까워서 어떻게 팔아넘길 수가 있을까 싶었다. 책 장사꾼이 책을 아까워하면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단다. 언제나 더 좋은 임자를 만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헌책 장사를 하다 보면 큰 보람을 안겨 주는 일도 생긴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애타게 지나간 잡지를 찾는 분이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글이 소개된 잡지를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분도 아니었고, 이름난 잡지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구하기가 힘들었다. 수소문 끝에 3개월 만에 찾아서 연락했더니 책값과 함께 진심에서 우러난 사례를 하고 갔다. 책장사에게 책은 곧 돈이라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사례도 있다. 책 사이에 돈이 끼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손님 중에는 책에서 나온 돈을 들고 와서 “이 돈은 내 게 아니다”라면서 돌려주는 분들도 있다.

자신이 나오지 않은 학교 졸업 앨범을 구하는 이유도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옛날 졸업 앨범에는 옛날 건물 사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명 인사가 나온 해의 졸업앨범은 가격이 치솟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졸업하던 해의 목포상고, 노무현 대통령 사진이 든 부산상고 졸업 앨범은 100만 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책을 소개해야 하는 유튜브 고서 경매는 책을 모르면 할 수가 없다. 또한 어떤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책도 가치가 달라진다.

양 대표는 책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었다. 그는 “전자책이 나오자 종이책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책이란 형태가 조금씩 바뀔 뿐이지 책의 미래는 계속 밝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고서점 양수성 대표가 지난달 벡스코에서 열린 북앤콘텐츠페어에 참여했다. 고서점 양수성 대표가 지난달 벡스코에서 열린 북앤콘텐츠페어에 참여했다.

사람들이 책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텔레비전이 나왔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비평가나 문학평론가, 신문의 서평은 영향력이 확실히 감소한 반면, 북튜버나 북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커졌다. 영상 크리에이터가 쓴 책은 매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꿰찬다. 영상으로 이야기하고 돈을 버는 크리에이터가 책을 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헌책방 대표의 유튜버 변신은 상징적이다. 달라진 세상에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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