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우리 모두 그땐 그랬지 (리뷰)

2016-02-19 08:44:01

전남 고흥의 섬마을을 배경으로 풋풋했던 첫사랑을 통해 지난날 아련한 기억을 들춰낸 영화 '순정'은 '응팔'과는 차별화하면서 관객의 군침돋게 하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주피터필름 제공

라디오 DJ 형준(박용우)은 생방송 도중 낯익은 이름의 사연에 당황한다. 사연을 보낸 사람은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첫사랑의 이름 수옥이다. 정성스레 쓰인 노트를 보면서 형준은 23년 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이은희 감독의 영화 ‘순정’은 이렇게 관객들에게 1991년 여름으로 시간 여행을 인도하면서 시작을 알린다.
 
‘순정’은 1991년을 주요 배경으로 내세워 어린 시절 추억을 상기시키고, 순박한 시골 아이들의 풋풋한 첫사랑을 통해 가슴 속에 묻어둔 아련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들춰낸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지만, 범실(도경수) 수옥(김소현) 산돌(연준석) 개덕(이다윗) 길자(주다영) 등 다섯 친구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박용우 박해준 이범수 김지호 등 현재의 인물들은 전체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보다 과거의 추억을 관객과 함께 공유하는 역할이다. 
 
전남 고흥의 작은 섬마을, 그곳에는 17세 청춘들이 놀만한 게 많지 않지만,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 너나할 것 없이 장애로 인해 걸음이 불편한 수옥의 다리가 되어주는 등 이들의 ‘우정’은 순박한 미소만큼이나 아름답다.
 
첫사랑은 영화를 더욱 감성적으로 만든다. 수옥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묵묵히 바라보는 범실의 수줍은 행동은 순수함을 극대화한다. 수옥의 창문 아래 담벼락에 기대 수옥의 목소리를 듣는 범실의 모습에서는 설렘이 가득하다. 
 
또 각각의 캐릭터에 명확한 성격을 부여하면서 앙상블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소소한 일상이 전부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수옥은 장애를 안고 있지만,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이다. 개덕과 길자는 구수한 사투리로 웃음을 책임지고, 범실과 산돌은 묵직함을 담당한다. 또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의 수옥이나 뽀글뽀글한 머리의 개덕 등 적당한 촌스러움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다섯 배우는 1991년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음에도 그 당시의 인물처럼 극에 녹아들었다.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난 이들이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그 앙상블이 뛰어나다. 또 김소현과 도경수는 주연으로서 극을 안정감 있게 끌어간다. 조연들의 활약도 뛰어나다. 개덕의 형 용수(박정민), 개덕모(황석정) 등은 짧은 출연에도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추억의 올드팝과 90년대 대중가요 역시 ‘순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캔자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 아하의 ‘테이크 온 미’(Take on me)를 비롯해 김민우의 ‘사랑일뿐야’, 무한궤도의 ‘여름이야기’ 등 가요들은 자연스럽게 9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김소현이 부르는 ‘보랏빛 향기’는 극 중 수옥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진다. 
 
또 카세트 테이프와 마이마이, ‘배철수의 음악캠프’ 포스터, 당시 교과서와 초콜릿 포장지 등은 90년대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반갑게 맞이할 영화 속 소품들이다. 
 
‘순정’은 여러 면에서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연상케 한다. 시대적 배경은 물론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찬란했던 그 시절 그들만의 우정과 첫사랑의 기억을 들춰내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중후반부를 지나면서 그 질감은 차별화된다. 24일 개봉.
 
사진=주피터필름 제공 
  
황성운 기자 bstoda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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