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두려움 대상' 해골, 이젠 문화적 코드로

■얼굴의 인문학/이지호
현직 구강악안면외과 의사 집필
얼굴뼈 다룬 의학 인문 교양서
인간 정체성·특징·사회 역할 조명
표정 만드는 안면 신경 이야기 흥미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5-08-31 09:00:00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백린이라는 물질 때문에 턱뼈가 녹아내리고 고름이 잇몸을 뚫고 흘러나와 고통당했다. 세종서적 제공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백린이라는 물질 때문에 턱뼈가 녹아내리고 고름이 잇몸을 뚫고 흘러나와 고통당했다. 세종서적 제공

‘현직 구강악안면외과 의사가 쓴 얼굴뼈를 다룬 세계 최초의 의학 교양서’. 이 책의 소개 글이다. 전 세계 모든 의학 교양서를 일일이 확인했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참신하고 독창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얼굴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며,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그 자체고, 대화와 음식 섭취를 통해 존재를 유지하는 우리 몸의 대표 부위이다. 사시리 얼굴에 관한 책은 그동안 많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세계 최초’라고 강조한 건 표피적인 미추(美醜)의 관점을 떠나 해부학적 구조로 인간다움을 해석했다는 점은 신선하다.

사실 저자가 치대생 시절, 해부학은 반복해서 암기하는 건조한 과목이었다. 졸업 후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로 진로를 결정하며, 해부학은 암기를 넘어 몸에 새겨야 할 지식이었다. 무너진 얼굴뼈를 재건하고, 환자 얼굴 어딘가에 도사린 구강암과 숨바꼭질에서 해부학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백린이라는 물질 때문에 턱뼈가 녹아내리고 고름이 잇몸을 뚫고 흘러나와 고통당했다. 당시 성냥공장 노동자의 모습. 세종서적 제공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백린이라는 물질 때문에 턱뼈가 녹아내리고 고름이 잇몸을 뚫고 흘러나와 고통당했다. 당시 성냥공장 노동자의 모습. 세종서적 제공

우리는 얼굴을 통해 누군가를 알아보고, 때로는 외모로 그 사람의 상당 부분을 규정하기도 한다. 심지어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로서 얼굴의 뼈에 집중했고, 그 뼈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의사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메디컬 일러스트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 곳곳에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와 웹툰이 나온다. 딱딱한 강의보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은 세 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먼저 얼굴뼈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살펴본다. 그다음 혀, 점막, 잇몸, 신경 등과 소통하는 얼굴뼈의 특징을 짚는다. 마지막으로 얼굴뼈가 문명사회에서 갖는 역할을 설명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뼈 중 얼굴뼈는 특별하다. 뼈 무더기 속에서도 단번에 눈에 띄며, 치아와 턱뼈로 뼈의 주인이 무엇을 먹고 살았으며, 어떤 질병으로 고생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죽음은 얼굴뼈(해골)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랜 상징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대에는 이 얼굴뼈가 공포와 두려움을 상징했으나, 언제부터인가 문화적인 코드로 얼굴뼈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멕시코 망자의 날은 해골 분장을 한 후 떠들고 논다. 팝아트의 소재로도 흔하게 사용되며 록 밴드의 앨범 재킷, 만화 영화, 이모티콘에서 해골은 다양하게 활용된다.

머리뼈는 좀 다른 특징이 있다. 22개의 뼈가 오밀조밀 결합한 신비한 퍼즐이다. 지금도 80억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퍼즐을 몸 위에 붙이고 지구 위를 돌아다닌다. 마치 우리 인생을 느리게 녹화하는 블랙박스나 바디캠 같은 역할이다.

교통사고, 구타, 낙상 등 외부 충격으로 인해 부러진 턱뼈를 제자리에 맞춰 나사로 고정하는 건 구강악안면외과 의사가 하는 대표적인 수술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일부러 턱뼈를 부러뜨려서 원하는 위치에 고정해 달라고 찾아오는 환자가 생겼다. 끔찍한 이야기 같지만, 이 수술로 마음에 드는 외모를 갖는 것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소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연예인부터 일반인까지 이젠 많이 알려진 ‘양악수술’이다.

양악수술은 코 아래쪽 얼굴의 절반이 통째로 이동하는 대규모 수술이며 과거에는 위험한 요소도 많았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 CT촬영을 통해 환자의 얼굴뼈를 정확히 관찰하고 3D프린팅으로 얼굴뼈 이동 위치와 정확한 가이드까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치과의사가 독립된 직업으로 분리되기 전, 이발사들은 의자에 손님 혹은 환자를 앉혀 놓고 간단한 외과 시술이나 이발을 해줬다. 세종서적 제공 치과의사가 독립된 직업으로 분리되기 전, 이발사들은 의자에 손님 혹은 환자를 앉혀 놓고 간단한 외과 시술이나 이발을 해줬다. 세종서적 제공

책은 인간을 괴롭힌 잇몸병과 구강암, 안면신경과 감각 신경 이상증도 언급한다. 병을 고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표정을 만드는 안면 신경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얼굴 근육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는 건 동물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인간다움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마지막 장은 죽은 자는 말할 수 없지만, 증거 훼손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피해자의 억울함과 신원을 증명하는 치아와 얼굴뼈에 관한 내용이다. 특히 전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한국은 수년 전부터 틀니와 임플란트가 보험에 포함됐고, 보험공단에는 전 국민의 치과 진료 기록이 축적되고 있다.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신원 확인에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말이다. 의료인이 쓴 의료 교양서지만, 어려운 용어가 없어 쉽게 읽을 수 있다. 이지호 지음/세종서적/284쪽/1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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