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10-19 09:00:00
인간은 지구의 주인도, 세상의 주인도, 동물의 주인도 아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 전 우주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했고, 이 같은 오만함으로 지구 환경은 파괴됐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위치에 오른 건, 인간의 지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이 다른 종보다 수백, 수천 배 더 폭력적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 같은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그림책 2권이 있다. 동물들의 우정과 연대를 바탕으로 폭력적인 인간을 향한 유쾌한 반격을 담고 있다.
<안 될 거 없지>의 책 표지는 제목 옆에 ‘새게북이곰?’라는 부제가 있다. 알쏭달쏭 퀴즈 같은 이 단어는 책이 가진 경쾌하고 상상력 넘치는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적한 호숫가에 심술궂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위협한다. 참게는 집게발을 딱딱대며 고양이를 쫓아냈고, 새는 날아서 나무 위로 도망친다. 고양이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참게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참게는 새에게 우리가 하나 되어 고양이에게 복수를 하자고 제안한다. 새가 게를 잡고 날았고, 게의 집게발로 얄미운 고양이 코를 꼬집어 준다. 둘의 결합에 헤엄치는 거북이, 힘이 센 곰이 합세해 새게북이곰이라는 최강의 연합체가 탄생했다.
이들이 호숫가를 즐겁게 돌아다니다가 대형 쇼핑센터를 짓겠다며 나무를 몽땅 베어버리는 공사 현장을 발견한다. 소중한 삶터가 망가지는 걸 지켜볼 수 없어 새게북이곰은 해결책을 찾아 출동한다. 대통령을 데리고 와 현장을 보여준다. 대통령은 문제점을 알겠지만, 자신이 당장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를 막기 위해선 새로운 법이 필요하고, 법은 의회가 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새게북이곰은 의원들 모두에게 호소해 호숫가를 국립 공원으로 지정해 개발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자신의 삶터를 지켜낸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편리해지지만, 이면에 따르는 자연의 희생에 점점 둔감해진다.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고, 갯벌을 메워 공장을 세우고 있다. 이 책은 지구 위 모든 생명체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를 유쾌하지만, 통찰력 있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기존 그림책에선 동물들이 힘을 합쳐 개발자를 쫓아내는 해법이 주로 제시되지만, 이 책은 의회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현실적인 해법을 선택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홈’의 원작 동화를 쓴 애덤 렉스 작가의 상상력이 빛나고, 한국계 미국인으로 언론에 풍자성 짙은 카툰을 주로 게재한 로라 박의 발랄한 그림도 눈길을 끈다. 애덤 렉스 글·로라 박 그림·신수진 옮김/노란상상/60쪽/1만 7000원.
<얼음을 주세요>는 노동과 환경이라는 우리 사회 중요한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림책이다. 이야기 짜임새가 훌륭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책이 가진 핵심적인 메시지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식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인 북극곰 홀리는 물이 무서워 수영을 못 한다. 어린 시절 인간의 그물에 걸려 익사할 뻔한 사건을 겪었고, 그 기억 때문에 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얼음 위에서 생선을 낚아채며 먹이를 구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점점 녹아내린다. 생계유지가 힘들어져 결국 홀리는 가족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인간이 사는 도시로 온 홀리는 ‘힘세고 추위에 강한 직원’을 구하는 구인 광고를 보고 얼음 공장에 취직한다.
인간은 얼음 창고에서 한 시간도 견디기 힘들지만, 홀리는 종일 얼음 창고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한 달간 열심히 일하고 홀리는 얼음 한 덩이를 월급으로 받아 북극 가족에게 보낸다. 공장 사장은 결국 인간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얼음 공장에서 종일 버틸 수 있는 홀리와 북극여우 사티만 남는다. 쉬지도 못한 채 일을 하며 결국 건강이 악화됐고, 공장에서 도망친다.
둘은 마음대로 부려 먹고, 약속한 월급마저 주지 않은 악덕 사장을 고소하고, 첫 재판에서 패소한 후 학대당한 절박한 동물들의 연대를 통해 결국 환경 오염에 관한 책임을 물어 손해 배상 청구 재판에서 이긴다. 노동의 가치와 환경 보호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깊이 있게 고민하는 책이다. 이귤희 글·김현영 그림/길벗스쿨/116쪽/1만 4000원.